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하마드 자히르 샤 (문단 편집) == 여담 == * 그가 실각하지 않고 계속 재위해 있었다면 [[실제로 장수한 군주들|73년 9개월여간 재위했었을 것이다.]] 만 40년에서 고작 3개월여가 모자라게 재위했으나, [[설상가상|퇴위 후에도 34년을 더 살아 아프가니스탄의 온갖 불행과 풍파를 모두 보고 말았다]]. * 수줍음이 많고 겸손하며 말도 굉장히 부드럽게 하는 등 예의범절을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 [[다리어]], [[파슈토어]]는 기본이고, [[영어]]와 [[프랑스어]]도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아내이자 왕비 후마이라 베굼은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아서 왕비로 있을 때 남편에게 여성 인권을 확립하고 성차별을 근절하는데 애를 많이 썼다. 참고로 후마이라 베굼은 남편, 자식, 손주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한 지 1년 뒤인 2002년에 사망했는데 사망했을 때의 나이가 83살로 남편만큼 상당히 장수했다. * 여러 민족들로 이뤄진 다민족 사회의 국가에서 민족 갈등과 대립을 억제하고, 자신의 치세 동안 평화를 유지해오다가 폐위/사망한 이후에 나라가 내전으로 사분오열되거나 최악의 분쟁 지역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냉전 시기에 지구 반대편 동부유럽에 존재했던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와도 비슷한 부분이 존재한다.[* 단, 티토는 파슈툰, 타지크, 우즈베크 등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민족들을 막론하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 사이에서 긍정적 평가가 많은 자히르샤 아프가니스탄 국왕과 달리 구 유고 연방에 속해있었던 동유럽권 국가들 내부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최근에는 구 유고 연방이 참혹한 민족, 종교간의 유혈참극을 겪으며 분열, 해체가 됐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밀로셰비치나 투지만, 카라지치 등 유고 연방 말기에 민족주의 노선을 내걸며 민족 및 연방 분열을 선동하며 전쟁과 학살을 저지른 당시 구 유고권 국가들의 정치 지도자들보다 살아 생전 티토의 억압적인 공산당 1인 독재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민족 간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등 복잡한 다민족 사회의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적으로 다스린 명군이지만 동시기 이웃나라 [[이란]]의 마지막 군주인 [[팔라비 2세]]에 비해 그의 존재가 많은 역덕후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경우가 가히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팔라비 2세가 통치하던 이란이 자히르샤의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비해 국력이 크고 인구도 많은 대국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되기 이전까지 모하메드 모사데크 전 총리의 석유 국유화 시도와 백색혁명을 통한 급진적인 서구화 정책 등 많은 주요 사건들을 남긴 팔라비 2세의 이란에 비해 자히르샤 치세의 아프가니스탄은 1973년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당하기 전까지 이렇다 할 주요 사건들이 전무한 평화의 시기였던 것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